교육뉴스
도시로 떠나는 학생 잡아라… 시골의 반격 '군립 학원'
조선에듀2017.08.25 14:30조회 1,915

[오늘의 세상]
교육이 살아야 '인구절벽' 농어촌도 산다… 향토인재 사수 프로젝트
- 24개 郡서 중·고생 방과 후 교습
서울 등 대도시 학원 강사 영입… 우수학생 선발, 셔틀버스도 운영
국·영·수에 학종까지 무료 강의, 순창 "도시로 가는 청소년 줄어"
일부 교사 "사교육 폐해 심각… 선발되지 못한 학생들과 위화감"
고요하던 시골 마을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제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중·고교생들이 노란색 셔틀버스에서 내려 2층짜리 건물로 우르르 들어섰다. 눈 비비며 잠을 쫓거나, 입구에서 스마트폰 반납하는 모습은 서울의 여느 학원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21일 오후 7시 경북 성주군 '별고을교육원' 풍경이다. "여기는 아이들이 원체 귀해서 이렇게 100명 넘게 모일 일도 잘 없지예. 고향에 남아달라고, 어찌 보면 학생들에게 애원하는 심정입니다."(김종환 별고을교육원장)
◇'군립(郡立) 학원'을 아십니까?
별고을교육원은 성주군이 32억원 예산을 들여 지난 2014년 개원한 '군립학원'이다. 서울과 대구 등 대도시 학원 강사 경험이 있는 강사 12명이 중·고교생 119명을 가르친다. 학교 수업이 마치는 오후 6시쯤이면 셔틀버스 두 대가 면(面)과 읍(邑)을 가로지르며 6개 중·고교에서 학생들을 태워온다. 학원이 끝나면 집으로도 데려다준다. 수강료를 받지 않는 점만 사설 입시학원과 다르다.
본지 조사 결과, 전국 77개 군(郡) 단위 지자체 가운데 24곳(31%)이 군립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경북이 7곳으로 가장 많고, 경남(5곳), 전남(4곳), 강원·전북(각 3곳) 등이다. 김종환 별고을교육원장은 "군립학원은 중·고교생 방과 후 교습을 책임지는 일종의 공영형 학습시설"이라며 "도시로 빠져나가는 학생들을 붙잡으려는 농어촌의 몸부림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급속도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지자체가 꺼내든 비장의 카드라는 것이다.

지난 21일 경북 성주군 별고을교육원에서 중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고 있다. 성주군 예산으로 운영되는 이곳에선 수강료를 받지 않는다. 농어촌에서 도시로 떠나는 아이들을 붙잡기 위해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공영형 학습시설’은 전국에 24곳 있다. /성형주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 1440만명이던 청소년 인구(6~21세)는 올해엔 846만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인구절벽' 현상은 군 단위 지자체에서 더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대도시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참외 농사로 부농(富農)이 많은 성주군도 2013년 3472명이던 학생 수가 올해 2801명으로 떨어졌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이러다간 군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절박감이 들었다"면서 "고교 때까지만이라도 학생들이 남아줘야 지역 경제가 돌아가고 군에도 활기가 돌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학부모들 "군립학원 세워라" 으름장
전북 순창군은 2003년 군립학원 '옥천인재숙'을 세운 이후 학령인구 유출이 누그러졌다고 자평한다. 한충희 순창군청 주무관은 "예전에는 학령인구의 30% 정도가 대도시로 빠져나갔지만 군립학원 설립 이후엔 20% 정도로 완화됐다"고 말했다.
강원 횡성군에선 2011년 '인재양성원' 설립을 놓고 한바탕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역 학원단체와 일선 교사들이 반대해 군립학원 설립이 무산될 뻔했던 것이다. 당시 군청엔 매일같이 반대 민원이 쏟아졌다. 그러자 횡성군 학부모들이 "군립학원 안 세우면 우리는 다 (인근 대도시인) 원주시로 이사 가겠다"고 들고일어났다고 한다. 횡성군청 관계자는 "민심에 놀란 당시 군수가 관내 학교를 일일이 방문하고 설득한 끝에 예정대로 군립학원을 지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북 고령군(대가야교육원)과 전남 영암군(왕인아카데미) 등도 '학령인구 사수(死守)' 목적으로 군립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 4월 군립학원 신축을 앞둔 경남 의령군은 담당 공무원이 순창·산청·합천 등 전국 군립학원을 찾아 다니고 있다. 운영 노하우를 구하기 위해서다. 각지의 군립학원 원장들은 "시설보다는 강사진에 투자하라" "수업시간은 길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등의 조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규모 시(市) 단위에서는 시립학원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안동 퇴계학당, 김제 지평선학당, 밀양 미리벌학습관 등이 대표적이다.
◇"공교육 해친다" 비판도
군립학원들은 수강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대신 1년에 두 차례 치르는 선발고사에서 중1~고3 학생을 100~200명 뽑는다. 학교 수업이 끝난 오후 6시부터 수업을 시작해 밤 11시 이전까지 가르치는 게 보통이다. 최근 학생부 중심 수시모집 비율이 늘어나면서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컨설팅'을 해주는 곳도 있다.
성주군 별고을교육원은 국어, 영어, 수학, 사회·과학탐구, 논술 강사진을 갖췄다. 교육원장이 직접 서울 강남 입시학원 출신 베테랑 국어 강사와 수업 경험이 풍부한 수학 강사를 스카우트했다. 학생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고교 2학년 장재운(17)군은 "군립학원에 다니면서 대구에 있는 수학학원을 그만뒀다"고 했고, 중3 김동우(15)군도 "군립학원에서 바뀌는 수능 개편안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별고을교육원에서는 올해 졸업생 19명이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등에 고르게 진학했다. 김종환 별고을교육원장은 "농어촌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생기자 이젠 대도시에서 시골로 귀환하는 경우도 생긴다"면서 "이런 학생에게 '군에서도 대도시 못지않게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교사는 "공교육을 해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경북 지역 한 교사(52)는 "군립학원에서 이미 배웠다면서 학생들이 교실에서 조는 등 '사교육 폐해'가 심각하다"면서 "선발고사로 뽑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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