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어느 것을 육성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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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의 달인 5월에 즈음하여,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그리고 교사가 제자를 위하여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제목 -- (1)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기도 하는 것이 있고, (3) 싫어하지만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고, 사정이 이러한데도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하고 싶은 것을 못하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잘못하는 것을 억지로 하라고 강요받기도 한다. 좋아하는데도 잘못한다고 해서 그만 하라고 야단맞기도 하고, 좋아하고 잘한다고 해서 그렇게만 하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다면 아이의 진로나 장래를 위하여 잘하는 것을 하라고 시킬 것인가, 아니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시킬 것인가? 물론 아이들이 성장의 과정에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 다르고 자라서 다르기도 하다. 좋아하던 것도 어느 시기에 이르면 싫어지기도 하고 남보다 잘하던 것도 자라서는 상대적으로 뒤지는 수가 있다. 그리고 성장의 과정은 단순히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일정한 향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범위의 계속적인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또 새롭게 경험하게 되고, 관심과 취미도 이에 따라 달라지면 잘하고 못하는 것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긴다. 인간의 활동, 특히 의도적인 활동에는 그 활동을 하게 하는 어떤 심리적인 힘이 작용한다. 어떤 욕구, 필요, 의지와 같이 직접적이고 순간적인 것도 있고, 입지(立志), 포부, 소망, 집념 등과 같이 다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것도 있다. 그 힘을 일컬어 심리학에서는 “동기”라고 하고 모든 의식적인 행위와 활동에는 크고 작고 간에 어떤 동기가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동기의 개념은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거기에 작용하는 그 행위자의 내면적 혹은 외부적 힘의 작용을 의미하고,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와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로 구분하기도 한다. 내재적 동기는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고 외재적 동기는 외재적 가치(혹은 수단적 가치)를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학생이 수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수학의 질서와 세계를 분석하고 조작하고 이해하는 과정 그 자체만을 즐기지는 않는다. 애초에는 어떤 깨달음의 즐거움도 있겠지만 오히려 칭찬이나 보상을 통한 외재적 동기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있고, 내재적 동기에 지배되는 단계는 상당한 정도의 학습경험이 진행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에서 재미를 느끼고 그것을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자식을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은 부모는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는 초기에는 칭찬도 하고 야단도 치면서 가르쳤지만, 아이는 나중에 피아노를 무엇보다도 즐기는 생활을 하게 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학습이나 노력에는 반드시 어느 하나의 동기가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학생이 평소에 문학이나 과학이나 어느 분야에서 그야말로 내재적 동기에 지배되어 공부를 즐기고 그 자체로서 보상을 받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학년말에 보니 일등은 다른 친구가 가져가고 소위 일류대학에 진학하기도 어렵게 되고, 아무도 자기를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으며, 더 이상 공부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적어도 어느 수준의 외재적 가치의 요소가 따르지 않으면 내재적 동기만으로 자신의 활동과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내면적 만족과 외재적 보상은 어느 정도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물론 외재적 동기로 시작하여 내재적 동기로 전환하는 것이 때때로 가능하기 때문에, 상벌이나 보상의 방법과 같은 외재적 동기의 유발은 일시적 수단으로 사용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외재적 동기의 유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내재적 동기의 지속적 유지 자체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으로 변하여 어떤 공부가 외재적 동기에 지배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공부와 관련하여 아이가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을 관찰하거나 아니면 좋아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는 있고, 그것이 불가능하여 아이가 상벌과 강제 등의 외재적 동기에 지배되는 상태로 묶어 두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그러면 좋아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시킬 것인가? 좋아하는 것도 그것이 요구하는 능력이 없으면 좋아하는 것 그것만으로 보람된 인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내재적 동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좋아하는 것에의 보상은 만족감이고, 만족감이 지속적으로 혹은 간헐적으로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계속해서 좋아할 수 없게 된다. 바로 내재적 동기는 힘을 잃게 된다. 그래서 흔히 “소질”이라고 하는 것이 전혀 없으면 만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쉬운 대답은 적어도 잘할 수 있는 소질, 말하자면 좋아하는 것 그것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듯이, 잠재력도 일종의 성향이라는 말은 숨겨진 것이지 나타난 능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숨겨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아이가 공격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항상 남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심의 어떤 요소가 작용하여 좌절을 경험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공격적 성향이 파괴적 행동으로 관찰된다. 어떤 성향이 있다고 말할 때, 특정한 조건 혹은 환경이 주어지면 기대한 실제의 행동이나 변화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그 성향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게 하는 조건 혹은 상황이 주어져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여러 가지의 경험을 하는 것은 아이의 건강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박물관에도 데려가고 축구도 시켜보고 여행에도 데려가고 연극도 시켜보고 바이올린도 가르쳐 본다. 여러 가지의 폭넓은 경험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의 장에서 부모나 교사나 학생 자신이 어떤 능력이 실제로 발휘되고 있고 어떤 상황을 잘 감당하며 무엇을 즐겨하는가를 할 수만 있으면 체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잠재적 능력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능력(혹은 성향)이 발휘될 수 있는 경험(혹은 학습)의 장을 제공해 보아야 한다.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잘못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관찰해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